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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0주년 맞은 ‘독도의 날’, 무엇을 기념하는지 알고 있어?

‘독도의 날’을 맞아 알아보는 ‘독도의 날’에 대한 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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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연 기자
기사입력 2020-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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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다음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노래를 꼽으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많은 노래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 노래’는 첫 가사만 들으면 뒤의 가사가 자동으로 떠오르는 곡이다. 첫 가사만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이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노래,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땅’이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 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으로 시작하는 독도는 우리땅은 독도에 대한 정보를 가사에 녹여낸 희대의 역작(?)이다. 

 

독도는 우리땅에는 독도에 대한 온갖 TMI가 담겨있다. 1절에서는 독도의 지리적 위치가 나와 있다. 잠시 가사를 살펴보자.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동경 백삼십이 북위 삼십칠, 평균기온 십이도 강수량은 천삼백’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땅’ 일부)

 

실제로, 독도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에 있는 섬이다. 하지만 ‘외로운 섬 하나’는 아니다. 실제로, 독도는 약 89개의 크고 작은 바위섬이 옹기종기 모여 이뤄진 화산섬이다. 외로운 섬 하나로 보기에는 개수가 너무 많다.

 

독도가 바위섬으로 이루어졌다 보니 한때 ‘돌섬’으로 불리었던 시절이 있는데, 돌섬이 독도로 불리게 된 데에는 초창기 독도 이주민들의 사투리가 영향을 미쳤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공도령(空島令)이라는 조치가 있었다. 공도령이란 크고 작은 섬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전부 육지로 강제 이주시키는 정책이다. 

 

설에 따르면, 돌섬이 ‘독도’로 변화한 이유는 공도령의 해제와 맥락을 같이 한다. 공도령이 해제되면서 많은 전라도·경상도 남해안 출신의 이주민들이 독도로 이주해왔는데, 이때 그들이 ‘돌섬’을 ‘독섬’이라고 불렀다. 독섬의 ‘독’은 당시 전라도·경상도 사투리로 ‘돌’이라는 의미다. 이후 이 ‘독섬’을 한자로 표기하니 ‘독도’(獨島)가 됐다는 것이다. 이 설에 따르면, 지금의 ‘독도’는 돌섬과 독섬을 거쳐 최종적으로 ‘독도’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매년 10월 25일마다 돌아오는 ‘독도의 날’은 정말 ‘독도’를 기념하는 날인 것일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독도의 날은 대한제국이 독도가 대한제국의 영토임을 알리기 위해 독도 수호에 대한 의지를 표명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고안된 기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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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일본인들은 울릉도 같은 섬에 밀입국하면서 우리나라 영해 등에서 어업·조업 활동을 펼쳤다. 이를 알게 된 대한제국은 1899년 9월 일본공사관 측에 울릉도에 침입한 일본인들을 기한을 정해 돌아가게 하고, 그들처럼 개항장이 아닌 항구에 밀수한 일본인들을 조사·처벌해서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 공사는 ‘불통상항구의 외국인 밀무역에 대한 단속은 귀국(대한제국) 지방관의 직권’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결국 대한제국은 1900년(광무4년)에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발표해서 국제적으로 울릉도 일대 섬들이 대한제국의 영토임을 알렸다. 해당 칙령에는 ‘울도군’의 관할 구역이 △울도 △죽도(竹島) △석도(石島)로 표기되어 있다.

 

대한제국 정부는 칙령 제41조를 발표하면서 각 섬의 명칭을 일부 수정했는데, △울릉도는  울도 △죽서도는 죽도 △독섬(독도)는 석도로 표기했다. 당시 울릉도 주민들은 독도를 ‘독섬’이라는 호칭으로 불렀는데, 이를 의역하여 한자로 표기한 것이 바로 ‘石島’(석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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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리턴즈'에서는 지난 7월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인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설민석 작가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우산국(당시 독도)가 날씨가 청명할 때만 보이는 곳이었다는 기록이 존재함을 근거로 설명했다.  © 출처:MBC

 

물론 독도가 역사적으로 맨 처음 ‘돌섬’으로 불린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미 512년(신라 지증왕 13)에 하슬라주의 군주 이사부가 울릉도를 중심으로 한 해상왕국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독도를 우산도(于山島)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1432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 역시 독도를 ‘우산과 무릉 두섬’이라고 기록한 바 있다. 

 

그로부터 몇십 년 후인 1471년에는 독도를 삼봉도(三峰島)로, 1794년에는 가지도(可支島)로 불렸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즉, 1900년에 대한제국 칙령 제41호가 발표되기 전까지 독도는 다양한 이름으로 우리 역사 속에 존재했던 셈이다. 

 

그런데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발표한 지 5년이 채 안 된 1905년, 일본은 일방적으로 독도를 시마네현(島根縣)에 편입했다. 이후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고 부르며 2020년인 현재까지 독도가 일본의 땅이라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는 내년에 출판될 예정인 일본 중학교 사회 교과서 17종 중 14종에는 이미 ‘독도는 한국의 땅이었던 적이 없다’는 내용이 실려 역사 왜곡에 대한 우려마저 존재하는 상황이다.

 

현재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사 강사로 유명한 설민석 작가(現 단꿈아이 대표이사)는 지난 7월 MBC 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리턴즈’를 통해 “저들의 의도에 휘둘리면 안 된다. 우린 이슈화하지 말고, 전 국민이 독도에 대한 사랑, 역사적 지식, 의식을 머리와 가슴에 담는 게 독도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고 전했다.

 

[백뉴스(100NEWS)=조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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