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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여름엔 수박, 고려시대부터 ‘진리’였다

수박은 우리나라에 언제, 어떻게 들어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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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기자
기사입력 20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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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박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  


[백뉴스(100NEWS)=김영호 기자] “마지막 여름이 곧 다해 가니 이제 수박(西瓜)을 먹을 때가 되었다”

 

고려후기의 관리이자 학자인 목은 이색(李穡 1328~1396)의 시 ‘수박을 먹다’의 한 구절이다. 수박이 제철인 늦여름에 수박을 찬양한 시로, 고려에서도 여름과 수박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친구 같은 관계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에는 수박이 고려 말에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고려인이었으나 몽골에 귀화해, 고려인들을 괴롭힌 홍다구(洪茶丘)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개성(현재 북한의 개성시)에 수박을 심은 인물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수박’)

 

수박은 한자어로 서역에서 왔다고 하여 서과(西瓜), 혹은 수과(水瓜)라 표기했다. 현대까지 많은 사람들이 수박 특유의 시원한 식감에 여름에는 뭔가에 이끌리듯 수박을 찾는데, 이는 조선시대 왕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알고 보면 수박은 꽤 ‘비싼 몸’이었다.

 

세종 때는 수박 가격이 무려 쌀 다섯 말이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단위야 시간이 흐르며 변했을 수 있겠지만 요즘으로 치면 쌀 한 말은 8kg이니, 수박 한 통이 10만 원이 넘었다는 것이다. (쌀 20kg은 대부분 5만 원 이상이다.) 

 

또 세종실록에는 한문직이라는 사람이 수박을 도둑질했다가 곤장 100대를 맞고 귀향을 가게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아무렴 지금의 쌀가격으로 쳐야 10만 원이지, 조선시대에는 쌀이 주식이었고 지금처럼 농업이 발전하지도 않아 더욱 귀했을 것이다. 아마 당시에는 10만 원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었을 것이라 판단되는데, 이런 수박 앞에서는 세종대왕도 화를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수박 때문에 화를 참지 못한 왕은 또 있다. 선조실록에는 선조가 “사포서(司圃署)가 진상한 수박은 먹을 수 없는 것으로 책임만 면하려 진배(進排)한 것이다. 사옹원(司饔院)도 검거하지 않았으니, 이 또한 탕패한 소치이다. 왜적이 가져갔는가? 게으르고 불경한 것이 심하니, 모두 추고하라”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사포서는 임금이 먹을 채소를 관장하는 부서였고, 사옹원은 임금에게 올리는 음식을 총괄하는 부서다. 사포서가 진상한 덜 익은 수박을 먹고 화가 난 선조가 “잘 익은 수박은 다 왜놈들이 가져갔니?”라고 사포서 관리들을 면박 주며, 덜 익은 것을 사전에 확인하지 않았던 사옹원 관리들까지 다그친 것이다. 선조 역시 수박을 아주 좋아했던 모양이다.

 

이처럼 수박이 귀해지니 귀족과 마을 관리들은 수박을 눈에 불을 켜고 마을에서 긁어모으려 했고, 농민들은 이들이 두려워해 수박을 재배하지 않았다. 다산 정약용이 포항지방에 귀향 갔을 때 지은 ‘장기농가(長鬐農歌)’의 일부에는 “-전략-호박 심어 토실토실 떡잎이 나더니만/밤사이에 덩굴 뻗어 사립문에 얽혀 있다/평생토록 수박을 심지 않는 까닭은/아전 놈들 트집 잡고 시비 걸까 무서워서라네-후략-”라고 까지 적혀있다.

 

여름철에만 만날 수 있던, 그리고 비싼 몸이었던 수박이었지만 이제 생산기술이 발전하고 재배하는 곳이 많아짐에 따라 우리는 일년 사시사철 수박을 먹을 수 있다. 2010년 기준 한국에서만 수박은 약 68만 톤이 생산되었다. (농림수산부, 2010)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수박’하면 여름을 떠올리고, ‘여름 대표 과일’이라 하면 수박을 떠올린다. 아마 이는 고려 때부터 우리 유전자에 깊숙이 ‘여름엔 수박’이라는 말이 ‘진리’처럼 자리 잡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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