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미남 배우 알랭 들롱이 지핀 ‘안락사 논쟁’…“잘 살고, 잘 죽는다는 것이란?”

안락사 찬반 여전해, 존엄한 죽음 vs 생명 존중…웰다잉 문화 확산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 변화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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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슬 기자
기사입력 2022-04-1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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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미남 배우 알랭 들롱의 모습.(오른쪽 과거)  © 사진=AFPBBNews

 

한 시대를 주름잡은 프랑스 미남 배우 알랭 들롱이 최근 안락사 의사를 밝히면서, 인간의 존엄한 죽음에 관해 물음을 던집니다. 지난 3월 프랑스 외신에 따르면, 알랭 들롱의 아들 안토니는 프랑스 RTL 라디오 인터뷰에서 “아버지로부터 안락사에 대해 요청을 받았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알랭 들롱의 이런 결정은 전 부인이자 안토니의 친모 나탈리 들롱의 죽음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1월 췌장암으로 사망한 나탈리 들롱은 안락사를 희망했으나 프랑스에서는 법적으로 불가능해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사실 알랭 들롱은 꽤 오래전부터 여러 인터뷰를 통해 안락사에 대한 찬성의 뜻을 내비치곤 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안락사는 가장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 “특정 나이부터 우리는 병원이나 생명유지 장치를 거치지 않고 조용히 세상을 떠날 권리가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1999년 스위스 국적을 취득해 프랑스, 스위스 이중국적자인 그의 안락사는 스위스에서 이뤄질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알랭 들롱은 이미 변호사들과 재산 분배 등 신변 정리도 다했다고 합니다. 

 

수려한 외모와 연기력으로 프렌치 누아르 전성기를 이끈 명배우의 안락사 결심 소식은 오랜 시간 논쟁의 대상이었던 안락사 찬반에 다시금 불을 지폈습니다. ‘인간답게 죽을 권리’와 ‘생명 존엄’ 그 사이를 오가면서 말이죠. 먼저 안락사(安樂死)의 뜻을 풀자면, 편안하고 즐거운 죽음입니다. 고통받는 중환자를 위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종결시키는 모든 행위를 일컫습니다.

 

안락사에는 방법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의료진이 직접 약물을 주입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 의사가 처방한 치명적인 약물을 환자가 직접 복용하면 ‘조력자살’,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와 ‘존엄사’가 있습니다. 많이들 헷갈려 할 수 있는 부분이 ‘소극적 안락사’와 ‘존엄사’인데요. 둘은 엄연히 다릅니다. 소극적 안락사는 모든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것을 공급하지 않고, 존엄사는 최소한의 통증 완화 치료, 영양분, 물, 산소의 공급은 이루어집니다. 

 

현재 스위스, 콜롬비아, 룩셈부르크, 벨기에, 네덜란드, 미국 캘리포니아·콜로라도·하와이·오리건·버몬트·워싱턴·뉴저지·몬태나 등 8개 주에서만 안락사가 허용됩니다. 알랭 들롱이 안락사 하기로 결심한 스위스는 1948년부터 약물 처방 등 의사의 도움을 받아 환자 본인이 직접 약물을 주입 및 복용해 목숨을 끊는 조력자살이 합법입니다. 알랭 들롱이 선택한 죽음의 방법은 엄연히 말하면 조력자살인 셈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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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락사 찬반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웰다잉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 김이슬 기자


우리나라의 경우는 조건이 까다롭기는 하나 존엄사는 합법입니다.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존엄한 죽음인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식물인간이 된 김 할머니에 대해 연명치료를 중단해달라고 가족들이 병원에 요청했으나 이를 거부해 법정 소송까지 이뤄졌습니다. 이에 대법원은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이른 환자가 인간으로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라며 존엄사를 허용했습니다.

 

김 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2016년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습니다. 환자 의사에 따라 생명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중단 및 유보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다만, 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돕는 등 죽음에 직, 간접적으로 가담할 경우 형법상 촉탁•승낙에 의한 살인이나 자살 교사•방조죄로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오랜 논쟁 끝에 2018년 2월 존엄사 법령이 제정된 이래 우리나라에서도 죽음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중환자의 경우 가족 간 합의 또는 미리 써둔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통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데, 지난 2월까지 그 숫자가 121만 953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제도가 처음 시행된 2018년에 10만 1032건이었다고 하니 4년 사이 110만 건 가량이나 증가했습니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9,930명 대상으로 연명 의료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85.6%가 반대한다고 답했습니다. 신체적•정신적 고통 없는 임종이 중요하다고 답한 노인도 90.5%에 달했습니다. 살아온 지난 인생을 아름답게 매듭짓고자 하는 ‘웰다잉’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지만, 여전히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안락사를 타인의 생명을 뺏는 행위이자 인간 의지로 죽음을 택한다는 것이 인간 생명의 존엄성, 도덕적 관념에 위배되는 행위로 여겨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의료적 오판 가능성과 각종 범죄에 악용될 우려를 표하기도 합니다. 

 

인간에겐 누구나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거나 활발하게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이 극히 적었습니다. 죽음이라면 그저 회피하거나 무작정 부정적으로 여기기에 바빴죠. 이제는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야말로 어떤 죽음이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웰다잉’인지 다시금 치열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백뉴스=김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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